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include(틀:국기, 국명=이라크, 출력=, 크기=40)] [[이라크]]※☆ === 2011년 2월 10일. 작은 규모로 첫 시위가 발생. [[이라크 전쟁]] 이후의 치안 불안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2월 12일.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사법 시스템의 부정부패 척결 등을 외치며 바그다드와 카르발라 도시 지역에서 수백 명의 시위가 있었다.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 [[누리 알 말리키]] 총리는 2014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하고 월급을 자진 삭감하여 절반만 받기로 하였다. 16일, 이라크 동부 도시인 쿠트에서 주지사의 사임과 공공 서비스의 확충을 이유로 2천여 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다. 진압 과정에서 3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17일, 이라크 북부 도시인 쿠르디스탄의 술라이마니야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부패와 고실업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발포로 2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 18일, 이라크 남부 도시인 [[바스라]]에서 천여 명의 시위대가 주지사의 사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25일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바그다드 거리를 메웠으며 다른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이 날 보안군의 발포로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라크는 바레인 시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걸프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2012년, 2013년, 2014년 1월에 걸쳐서 부패한 총리의 불만에 대한 반정부시위/항쟁이 연달아 일어났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그 시위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중에 막장인 [[ISIL]]이 본격적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결국 2014년 이후 최악의 사태로 연결되고 말았다. [[이라크 내전]] 참조. 2018년 이후로 IS 세력들이 거의 토벌된 뒤에는 이라크인들 스스로 폭력에 의존하는 행위의 위험성을 깨달은 것인지 총까지 든 내란 수준의 폭력시위는 확 줄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없어진 건 아니어서 내부의 부패 및 부정선거로 인한 의혹 등에 대한 불만에 의거한 일반적인 시위는 계속되었으며, 2019년 10월 시위가 다시 나타났다. 결국 2019년 10월 31일, 이라크의 새 총리는 유혈진압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또다른 시위가 나타나는 중이기도 하다. 결국 11월 29일에 마흐디 총리는 사퇴하였고, 2019년 12월 27일에는 대통령조차 물러났다.[[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191228002600038?did=1947m|#]] [[이라크 반정부 시위]] 참조. [[사담 후세인]]과 [[바트당]] 정부가 [[이라크 전쟁]]으로 붕괴되지 않고 이때까지 존속했거나 혹은 사담 후세인의 아들인 [[쿠사이 후세인]]이 대통령이 되는 등 부자 세습이 이뤄졌다면 잔혹한 유혈 진압이 일어났거나 이웃나라 [[시리아]]처럼 종파간 내전으로 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